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9대 대통령 선거 (문단 편집) == 요약 == 위에서 언급했듯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이었던지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의 지지는 폭락했고, 반대급부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는 급상승하면서 "민주당 경선은 여자[[양궁]] 국가대표 선발전[* 양궁 메달을 한국 국가대표팀이 싹쓸이하는 것에 비유한 것. [[올림픽]] 본선보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한술 더 떠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말마저 돌 정도로 민주당, 특히 [[18대 대선]]에도 출마했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를 지낸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판세에서 진행되었다. 종전 범여권의 유력 주자로 꼽히던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검증 공세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했으며, 보수진영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던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불출마를 선언하며 범여권의 상황은 더욱 암울해졌다. 한편 [[성완종 리스트]] 관련해서 수사를 받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가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서서히 대권주자로서 거론되기 시작해 이후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과반이 넘는 압도적 지지를 받고 선출되었으나 당시 전국적 지지도로 보면 반기문·황교안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이후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상임고문을 위시하여 반기문 총장의 대안으로 떠오른 [[안희정]] 전 [[충남지사]], 일찍이 탄핵을 주장하며 여론의 주목을 받은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계속해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민주당 후보군의 지지율이 도합 60%까지 상승하기도 하면서 민주당의 압승은 더욱 분명해 보였으나, 그만큼 치열했던 경선은 각종 잡음을 낳았다. 이로 인해 최종 승리한 문재인 후보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일부 안희정·이재명 지지층이 경선 이후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대안으로 택하면서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해 판세가 불투명해졌고[* 다만 이재명 지지층 중에서는 중도 성향인 안철수보다는 진보 성향인 심상정 후보로 이동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곧이어 안희정을 지지했던 충청•보수층이 대부분 안철수 후보에게 전략적으로 지지를 몰아주면서 양자 구도가 되어 안철수 후보가 판의 주도권을 가져오게 되었다. 안철수 후보는 표본 조작 의혹이 있었던 일부 다자대결, 1:1 조사에서 1위를 하고[* 이때도 갤럽, 리얼미터, 알앤써치, 조원씨안아이 등등 대부분의 메이저 여론조사는 문재인 후보가 다자·양자구도 모두 3~10% 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1:1 대결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온 여론조사는 전부 표본조작의 의혹이 있었던 조사였다.], 메이저 여론조사에서도 최소 3%, 최대 10% 격차까지 따라붙으며 문재인 대세론을 크게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고 올라왔다. 설상가상으로 민주당 [[이언주]] 의원이 탈당해 국민의당에 입당하며 [[박영선]], [[이종걸]]을 위시한 민주당 비주류의 줄탈당이 점쳐지는 등 여러모로 민주당으로서는 최악의 위기였던 상황이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15&aid=0003752454|당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국경제의 기사.]] 위 기사를 보면 [[문적문]]을 언급하면서 "잦은 설화와 뺄셈 경선이 대세론을 무너뜨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당선권에 들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검증 공세 과정에서 김미경 교수 갑질 논란 등 그 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온갖 의혹이 수면 위로 올라왔고, 특히 TV 토론회에서 문재인과의 일대일 토론 개최 주장등 이전의 자신만만해하던 국민의당과 선거캠프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면서[* 특히 토론회 며칠 전 떠오른 민주당 네거티브 문건 논란 관련해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면서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이명박|MB]] 아바타입니까?" 등 본인 네거티브 코드를 자기 입으로 언급한 것(...)이 결정타였다는 평. ~~떼쓰기는 덤.~~]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다시 폭락. 영남권의 압도적 지지율도 홍준표 후보에게 우르르 몰려가 순식간에 문재인에게도 밀린 지역 3위로 곤두박질쳤고, 위에서 언급한 민주당 비주류의 줄탈당도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후반 홍준표 후보가 급격히 치고 올라오며 골든 크로스는 고사하고 2위조차 위협받는 지경에 빠졌고, [[김종인]]을 영입하는 등 떠난 표를 다시 끌어오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호남을 포함하여 어느 한 기초자치단체에서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하며 최종 3위로 마무리했다. 결국 선거 기간 내내 꾸준히 보수층을 공략하기 위해 자신을 "반문 보수 후보"로 정체화하려 했지만, 자신의 공약조차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거나 국가적 이슈 사안에서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면서 호남 및 수도권, 영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잃는 원인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화로 일부 유권자를 결집시켰다는 평가는 틀린 표현이다. 왜냐하면 보수성이 강한 영남 전역에서 안철수 후보는 15% 내외로 전국에서 가장 저조한 득표율을 얻었기 때문이다.] 반대급부로 토론에서 보수층에게 먹혀드는 코드를 잘 활용한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했고, 막판 대결집으로 실버 크로스를 이뤄내 2위를 거머쥐었다. 그러나 강성 귀족 노조 발언, 만물 [[전교조]]설, [[5.18]] 가산점 문제제기, [[호모포비아]]스러운 발언 등 진보는 물론 중도층에게도 혐오를 불러 일으키는 카드를 꺼내면서 확장성을 버리는 전략을 취한 탓에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골든 크로스에는 한참 못 미쳤다.[* 특히 영남에서 공단 노동자들이 많은 [[울산광역시]](특히 [[북구(울산광역시)|북구]], [[동구(울산광역시)|동구]]), [[거제시]], [[창원시]]의 구 창원지역, 구 [[진해시]] 지역 유권자 표심에 불을 질러 이 지역에서 1위를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생 시절의 강간 모의 논란, 장인 "영감탱이" 해프닝 등 잡음 자체는 꾸준하게 빚어졌으나, 보수층에게 이 정도는 어디까지나 사소한 해프닝으로 여겨졌던 듯 하다.] 한편, 토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며 4위 자리를 굳히고 문재인의 지지도를 유의미하게 잠식하기 시작했다. 10%를 넘는 조사도 간간이 나왔는데, 이것이 위의 홍준표 후보 지지율 상승과 맞물려 막판 지지층 단속에 들어가던 민주당이 [[사표론]]을 제기하며 정의당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다만 이 경우는 정의당이 먼저 "될 사람한테 표를 주는 것은 사표"라는 역 사표론을 먼저 밀었기에 나온 맞대응이라는 주장 또한 있다. [[http://news1.kr/articles/?2981893|#]] 선거를 1주일 남짓 남기고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자 계속해서 단일화를 요구받다 급기야 당내 단일화파의 대거 탈당 사태가 일어났는데, 이에 대한 큰 역풍으로 오히려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은 반등하였고, 4위를 다시 가져왔다. 그러나 대선 기간 내내 지지율을 좀처럼 가져오지 못했고, 다수의 보수층에게서 외면을 받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 시절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마찰을 '배신의 정치' 운운하며 공천에서 찍어내는 등의 태도를 보인데다가 새누리당을 버리고 탈당해 독자 창당한 것 때문에 보수쪽에서는 '배신자' 낙인이 찍혀버렸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일단 새누리당 출신인 이상 진보쪽에서도 표심을 잡기 어려웠던 것이 주효했다. 게다가 역풍으로 지지율이 크게 오르기에는 고작 일주일도 안 남은 시점이어서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 밖에 대선 중 '[[김종인]], [[홍석현]], [[정운찬]]을 위시한 제3지대 빅텐트[* 원래 반기문을 구심점으로 제기되었으나 반기문이 낙마한 후 입지 및 파괴력이 줄었다.]', '홍-유-안 비문연대 단일화' 등 여러 변수가 제기되었으나 결론적으로 모두 흐지부지되어 이루어진 것은 없다.[* 홍석현의 경우는 대선 이후 문재인 정부 대미 특사로 뽑혔다.] 어쨌든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선거 내내 공고한 대세를 유지해온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되었다.[* 안철수 후보가 토론회에서의 '갑철수' 발언 등으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이탈한 표심이 홍준표 후보를 향해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실망을 극복하지 못했다.] 흐지부지되었던 [[2007년 UN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논란]]이 다시 떠오르고, [[문재인/비판과 논란/아들 고용정보원 취업 논란|아들 문준용을 둘러싼 취업 특혜 논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타 정당들, 특히 국민의당과 난타전을 벌였지만 대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선거는 여러모로 [[17대 대선]]의 리버스 버전이라 할만 하다. 일단 정부의 실정으로 인해 여당 지지도가 폭락했으며, 제1야당이 공고히 대세론을 유지했다. 대세 후보를 둘러싼 여러 설화 및 과열된 경선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또 다른 범야권 후보가 대세를 위협할만 한 강한 주자로 성장했으나 곧 지지도가 떨어져 3위로 마무리 했다. 여권은 유력 주자를 잃어버리고 오랫동안 어둠 속을 헤메다가 막판 결집에 성공해 여권 주자가 그래도 2위는 거머쥐었다. 그밖에 사상 최대 숫자의 군소후보의 난립, 젊은 층의 상당한 지지에 힘입어 급속히 상승세를 타다 후반 다시 보혁구도가 되며 기대보다 다소 낮은 성적을 거둔 소수정당 후보의 존재, 여야를 막론하고 이런저런 단일화 시도가 모두 허사로 돌아가 다자대결 1강 2중 2약 구도였다는 점--과 두 번 다 파란색 정당이 이겼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17대 대선과의 비교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결론|대선의 결론]] 부분에 자세히 나와 있다.[* 다만 안철수 후보와 달리 17대 대선에서의 이회창은 1위를 위협할 정도의 지지율을 갖고 있진 않았으며, 대선에서 폭망했다는 평을 받은 대통합민주신당과 정동영 후보와 달리 자유한국당과 홍준표 후보는 선거비 미보전으로 인한 당사 압류(...) 우려까지 나오던 데 비해선 생각보다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17대 대선 당시에는 이인제를 포함해서 1강 2중 3약의 6자 구도로 보는 시각이 많았으나, [[이인제]]는 본선에서 고작 0.68% 득표에 그치며 상당히 저조한 지지를 얻은 만큼 19대 대선과 같은 5자 구도로 봐도 큰 무리는 없다. 참고로 19대 대선서 6위를 기록한 조원진의 득표율은 0.1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